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통합방위협의회의를 주재하며 오는 5월에 전국 단위 민방공훈련 부활을 예고했다. 확고한 국민 보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민방위대는 1975년 월남 패망과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 다발로 인한 안보위기 고조 속에 창설됐다. 1983년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미그-19기를 몰고 월남해 귀순한 사건과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 등은 등화관제, 차량·주민 대피 실제훈련을 정당화시켜 줬다. 그러나 1990년대 초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안보 개념 변환과 햇볕정책이 대두되며 민방위 체제의 분절·형해화를 촉발하고 가속화시켰다. 더욱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치명상을 입고 식물인간 처지가 되었다고 본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러 대(對) 서방 간 대립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환경은 양안 갈등, 동·남중국해 분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특히 북한은 남한을 주적(主敵)삼아 끊임없는 미사일 도발을 자행하는 가운데 핵무력 법제화·전술핵 대량 생산과 핵탄두 보유량 증대를 대내·외에 선포했다. 7차 핵실험 카드도 여전히 손에 쥐고 있어 예사롭지 않다.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작금의 정세는 민방위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2015년 연천군 포격 사태 등과 2022년 서울 지역 폭우침수 사태, 이태원 다중밀집인파 참사는 물론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사태가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현 민방위 체제의 법·제도적 허점, 정부·지자체의 관심 소홀, 조직인력 축소·감축, 노후한 물자·장비·대피시설, 경보 전달 기반체계 미흡 등 취약점이 한둘이 아니다. 단순히 민방공훈련만 부활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대환경 변화에 맞게 민방위 체제에 대한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법·제도 보완이다. 2012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민방위 개념을 확대했음에도 이에 대한 후속조치가 미흡했다. 용어 정의에서 평시 치안·질서유지를 위한 집단군중의 폭동 행위·사회교란 행위 등에 대한 확산 방지 지원의 항목이 누락된 것이다. 또한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자연재해가 내포됨에도 ‘국가적 재난’ 존치는 의미가 없다. 삭제해도 재난 시 민방위 동원은 가능하다. 전·평시 업무 연계·유사성이 높은 민방위와 비상대비를 통합하고, 가칭 “비상 대비 민방위법”제정, 지원민방위대 운영 등 법적 뒷받침도 수반되어야 한다.
둘째, 담당 조직·인력 보강이다. 행정안전부 과(課) 조직이 민방위대를 편성·운영하면서 교육 훈련, 대피시설·장비·물자 관리, 확인 평가 등의 총괄 조정업무를 맡기에는 역부족이다. 국(局) 조직으로 증편함과 동시에 지자체 담당 조직을 정형화하고 유명무실한 단체·사찰·직장 등의 민방위대를 폐지해야 한다. 민방위대원 수 대비 효용성을 재판단해서 조직의 정원을 재조정하고 업무담당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가칭 '민방위 비상대비' 직속 신설 국가·지자체 간 수직·수평적 순환 인사의 제도화가 절실하다. 지난해 울릉도 공습 경보 시 공무원·주민의 우왕좌왕 늑장 대응·대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셋째, 보여주기 식 민방위훈련 패러다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민방위훈련 중기 계획수립과 사태유형별 훈련모형 설정, 지역단위 특성화 및 전국 단위 종합훈련을 재설계하여 민·관·군·경 통합훈련 틀에 맞춰 숙달되게 해야 한다. 특히 대량 전·사상자 처리, 군사작전·치안유지, 전기·가스·수도·통신 긴급복구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훈련에 참여하고 안전취약 계층인 장애인·노약자·외국인 등의 훈련참여 확대도 챙겨야 한다. 민간부문 인센티브 부여 등으로 훈련 참여에 대한 동기유발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끝으로, 경보 전달체계 다변화와 대피시설 현대화다. 신속한 조기경보를 위해 군(軍)중앙방공통제소와 중앙민방위경보센터 간 자동 연계·통합 경보발령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시대환경에 맞게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경보수단 다양화·입체화를 통해 ‘듣는’ 경보에서 ‘듣고 보는’ 경보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서해5도와 접경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공공대피시설의 화생방 방호, 핵미사일·장사정포의 살상력·파괴력에 대한 대비, 용수 공급과 수질 안전 보장, 지역별 인구밀도·인원수 등을 고려한 시설 재지정과 보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찍이 손자는 정부기관의 질서와 규율 그리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의 성패는 조직편성(曲制)에 좌우된다고 했다. 현행 민방위 체제의 재설계·구축은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의 명령이다. 국민 보호체계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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