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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소지왕의 태자 교체 속사정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소지왕의 태자 아지·준등·분종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19 19:32:19
 
▲ 정재수 역사작가
 ‘삼국사기’는 소지왕에서 지증왕으로 왕위가 넘어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임 소지왕이 죽고 아들이 없어 지증왕이 왕위를 이어받았다(前王薨 無子 故繼).’
 
‘아들이 없다(無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점이 눈에 띤다. 그러나 ‘신라사초’ 기록에 나오는 소지왕의 아들은 여럿이며, 특히 소지왕은 재위기간(479~500년) 중 3명의 태자를 교체하기까지 했다. 전반기는 아지(阿知), 중반기는 준등(俊登), 후반기는 분종(芬宗)이다. 왕의 재위기간 중에 태자를 세 번씩이나 교체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어서 그 속사정이 자못 궁금하다.
 
첫 번째 태자 아지는 병사
 
첫 번째 태자 아지(阿知)는 소지왕의 아들이다. ‘신라사초’ <소지명왕기>이다. ‘원년(479년) 토양 기미 5월, 정비 치군(齒君)을 상궁으로 삼으니 기보의 딸이다. 치군이 낳은 아들 아지(阿知)를 태자로 삼았다(以正妃齒君爲上宮 期宝女也 以齒君子阿知爲太子).’
 
소지왕은 태자 시절 기보의 딸 치군(齒君)을 태자비로 맞이했다. 치군은 태자비 시절 소지왕의 자녀 2남 1녀를 낳는데 2남은 아지(阿知·463년생)와 아해(阿亥·466년생)이고 1녀는 아씨(阿氏·460년생)이다. 아지는 치군이 소지왕의 상궁(제1왕후)이 되면서 태자에 봉해졌다.
 
하지만 아지의 태자 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지명왕기>이다. ‘5년(483년) 수시 계해 12월, 태자 아지가 전염병으로 죽으니 나이 21세다. 왕이 비통해 실음했다(太子阿知以疫薨 壽二十一 王悲痛失音).’ 아지는 뜻밖에도 483년 21세에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아지의 태자 재위 기간은 5년 간(479~483년)이다.
 
두 번째 태자 준등은 폐위
 
두 번째 태자 준등(俊登)은 지도로(훗날 지증왕)의 아들이다. <소지명왕기>이다. ‘5년(서기 483년) 수시 계해 12월, 준등(俊登)을 태자로 삼고 아씨(阿氏)를 태자비로 했다(以俊登爲太子 阿氏爲妃).’ 준등은 지도로와 파호(巴胡)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지도로의 혈통이다. 당시 소지왕의 상궁은 지도로의 여동생 원군(園君)이다. 원군은 480년 치군이 사망하면서 상궁에 오르며 지도로의 후광에 힘입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준등의 태자 위는 상궁 원군과 소지왕 사이에 벌어진 ‘거래(deal)’의 결과물이다. 원군은 친오빠인 지도로의 아들 준등을 태자에 봉하는 조건으로 소지왕의 딸 아씨(阿氏·아지태자 누나)를 태자비로 맞았다.
 
하지만 준등의 태자 위는 아지와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한다. 준등은 489년 태자에서 폐위됐다. 준등의 태자 재위 기간은 7년 간(483~489년)이다.
 
준등이 폐위된 이유는 무엇일까? 488년 묘심의 옥사(사금갑 사건)가 불러온 파장으로 원군은 천궁(天宮·상궁과 같음)에서 폐위되며 죽은 아지태자의 태자비인 지도로의 딸 후황(厚凰)이 천궁(제1왕후)에 봉해진다. 후황은 소지왕의 며느리이자 조카이다. 그런데 후황이 소지왕의 아들을 낳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지명왕기>이다. ‘10년(488년) 황룡 무진 12월, 천궁(후황)이 왕자 분종(芬宗)을 낳아 대사면하고 5일간 잔치를 열어 술을 내렸다(天宮生 王子芬宗 大赦 賜酺五日).’ 천궁 후황이 낳은 아들은 분종(芬宗)이다. 분종은 지도로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소지명왕기>이다. ‘11년(489년) 토사 기사 2월, 왕이 지도로를 천궁으로 불러 은밀히 의논하길 ‘준등은 군의 아들이고, 분종은 군의 손자인데 누구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이에 지도로는 왕의 뜻을 알고 준등에게 태자위 사임을 권했다(王召智度路于天宮 密議曰 俊登君之子也 芬宗君之孫也 誰可愛乎 智度路乃知王意 勸俊登辭位).’ 소지왕은 비록 후황이 지도로의 딸이지만 자신의 아들을 낳자 은밀히 지도로를 떠보며 태자 교체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 소지왕의 태자 관계도. [사진=필자 제공]
  
세 번째 태자 분종은 양위
 
세 번째 태자 분종(芬宗)은 소지왕의 아들이다. <소지명왕기>이다. ‘11년(489년) 토사 기사 3월, 왕이 백관을 모아놓고 분종을 태자에 세울 것을 의논하며 이르길 ‘적자(嫡子)를 세우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하니 군신 모두가 천궁(후황)을 두려워해 굽신거리며 태자 폐위를 따랐다. 준등을 왕자 전군(殿君)으로 하였다. 4월 왕의 생일에 분종을 태자에 세웠다(三月 王會百官 議立芬宗 曰 “立嫡常道也” 群臣皆畏天宮而唯唯乃廢 俊登爲王子殿君 四月 王生日 立芬宗爲太子).’ 분종은 소지왕의 의지대로 어린 나이(2살)에 태자에 봉해졌다. 또한 태자에서 폐위된 준등은 전군(殿君)으로 강등되며 5년 후인 494년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후 어린 태자 분종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지왕의 바람대로 태자 위를 지키고 또한 왕위를 이었을까? 아니다. 소지왕은 준등 태자의 나이 13세인 500년에 사망하며 왕위는 준등 태자가 아닌 소지왕의 동생 지도로(지증왕)가 차지했다. 이때 준등은 양위의 형식을 빌어 지증왕의 왕후 연제(延帝)의 소생인 법흥왕 모진(慕珍)에게 태자위를 넘긴다.
 
소지왕은 재위기간 중에 세 명의 태자를 교체했다. 소지왕의 적자인 첫 번째 태자 아지는 병사했고, 지도로의 아들인 두 번째 태자 준등은 폐위됐으며, 소지왕의 어린 아들인 세 번째 태자 분종은 지도로가 왕위를 이으면서 지도로의 아들 모진(법흥왕)에게 양위했다.
 
소지왕의 태자 교체에는 자신의 혈통으로 왕위를 잇고자 하는 소지왕과 동생 지도로(지증왕)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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