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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은 곧 ‘품격’이다. ‘말’은 사람의 사고(思考)와 철학의 집합체다. 인격의 집에 들어앉은 ‘말’은 그 자체가 선한 영향력이며 감동과 공감의 출발점이 된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말의 수준이 낮으면 그 지위와 재물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사람의 말은 곧 ‘존중’이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하는 태도와 방식에 따라 ‘배려’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혐오’가 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배어 있는 말은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말은 ‘반발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상대의 형편을 살피지 않고 내뱉은 말은 독사의 독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을 앞세워 내뱉는 말은 때론 ‘살 찐 돼지의 말’과 같다.
사람의 말은 곧 ‘진보’다. 생산적인 말은 무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사람과 조직을 발전시킨다. 반면 소모적인 말은 ‘포기와 비관’을 유발하며 사람과 조직을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틀을 깨려는 사람의 입에선 ‘내 탓’이 나오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의 입에선 ‘네 탓’이 나온다. 진보적인 말은 사회적 변화와 가치를 이끌기도 하지만 사람을 바꾸고 역사를 뒤엎는 힘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엔 유독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탓하지 마라’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등의 속담엔 인간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곧 ‘말’에서 비롯된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말은 곧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말을 통해 대중에게 어필한다. 비전을 제시하며 권력까지 노린다. 그렇기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는 말의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정치’판이다.
정치인의 말은 단호하고 명확할수록 좋다. 위대한 정치인일수록 단 한 문장으로 대중을 결집시킨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래 기억된다. 품격과 존중, 비전이 그 말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가 한 ‘그들(공화당)은 저급해도 우리는 품격있게(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말은 현재도 정치권의 간판급 문장으로 회자되고 있다. 비방과 이간질, 인신공격, 집단 선동이 난무한 정치 현실일수록 참된 정치인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명확히 일러 주는 지침과도 같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 눈물과 땀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이 말은 위기에 몰린 영국인들을 단합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이 짧은 구절은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교과서가 됐고,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 정국이 상극의 정치로 흐르면서 막말이 횡행하고 있다. 시정잡배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모욕적 언사가 거침없이 난무한다. 논리도 없고, 설득력도 갖추지 못한, 어쭙잖은 깎아내리기 식의 표현들이다.
5선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내란 옹호부터 사과하라” “내란 당일 윤석열과 왜 통화했나”며 비판하는 초선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을 향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초선 의원이 어디서 지금”이라는 모욕적 말을 내뱉었다.
박 의원 말마따나 그의 권위주의적 발상과 정신세계가 놀라울 따름이다. 국회의원은 선수(選數·의원 선출 횟수)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나 의원은 이 간단한 이치도 몰랐던 걸까.
나 의원의 막말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민주당 등의 초선 의원들은 나 의원 징계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는 “131명의 초선 국회의원과 이들을 선출한 유권자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비판했다.
또한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 하지 말라는 뜻인가”(정청래 민주당 대표), “5선 중진이라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것인가”(김병주 민주당 최고위원)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고, 급기야 최혁진 의원이 국회 회의 중 막말과 욕설, 고의적 고성, 회의장 점거 등으로 회의가 파행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나경원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이 논란에 대해 침묵했다. ‘막말’도 정파에 따라 ‘충고’로 변질되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은 최근 국민의힘 지지자를 ‘2찍’으로 비하하며 “한날한시에 싹 모아다가 묻어 버리면”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최 전 의원은 결국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국민을 향한 모욕과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적 언행을 반복한 최 전 위원장은 정계를 은퇴하고 평생 자숙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의 말에는 자신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품격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링컨의 국민을 위해, 처칠의 피와 땀을 흘리는, 오바마의 품격있는 정치인을 대한민국 대중도 갖고 싶다. 그것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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