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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 관세 부과로 격화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남미 가이아나·베네수엘라 간 영토분쟁 국면으로도 번지고 있다. 미국이 군사력 동원까지 시사하며 가이아나 지원 의사를 밝힌 가운데 중국에선 베네수엘라 쪽에 힘을 실어 준 듯한 메시지가 나왔으며, 19일(현지시간) 국내외 매체들이 일제히 국지적 형태의 ‘미·중 대리전’ 발생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가이아나의 에세퀴보를 자국 24번째 주(州)로 편입시켜 다음달 주지사·국회의원 등을 뽑을 예정이다. 선거 전후 두 나라 국경 갈등이 한층 첨예해질 것 같다. 베네수엘라·수리남·브라질과 접경한 가이아나는 한반도 정도 면적과 인구 82만여 명의 공화국이다. 에세퀴보가 가이아나(21만㎢) 국토 3분의2 이상을 차지한다. 다량 매장된 금·다이아몬드 등 각종 지하자원 외 근처 바다에선 거대 유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16일 가이아나 주재 중국 대사대리가 가이아나·베네수엘라 간 영유권 갈등에 대해 “우호적인 협의와 협상을 통해 국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사자국 간 대화 채널을 제안했다. 여기서 외교적 해결의 근거로 언급된 게 1966년 체결한 ‘제네바 합의’ 원칙이었고 베네수엘라 측 실효 지배를 인정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이에 가이아나 정부는 “중국의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에세퀴보 지역 영유권을 둘러싼 1966년 제네바 합의 해석이 서로 엇갈린다. 1966년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약속했으므로 그 이전에 나온 영토 관련 협의 내지 중재 모두 무효라는 게 베네수엘라 측 주장인데 가이아나에선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 가이아나가 영국령이었던 1899년 당시 에세퀴보 지역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영국 땅으로 인정됐기에 1966년 이후엔 독립국 가이아나 귀속이 자연스러운 논리라는 것이다.
가이아나 외교부가 19일 대(對)중국 규탄 성명에서 “에세퀴보 문제는 제네바합의에 근거하더라도 당사국 분쟁 해결 원칙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권을 훼손하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베네수엘라 주재 중국 외교관의 이번 언급은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압박에 직면한 베네수엘라의 ‘뒷배’임을 환기시키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을 방문해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대통령을 예방한 뒤 기자회견에서 “가이아나 공격을 감행할 경우 베네수엘라는 몹시 나쁜 하루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이를 군사력 지원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미국의 노골적 암시로 분석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마두로는 당장 루비오 장관을 ‘멍청이’로 지칭하며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병사한 우고 차베스(1999~2013년 재임)의 후계자인 마두로의 정통성 문제도 더욱 불거질 전망이다. 마두로는 부정선거 논란 속에 1월 초 세 번째 6년 임기를 개시했으나 서방 세계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차베스 전 대통령 복지정책의 충실한 계승자인 마두로 12년을 거치며 베네수엘라 경제는 악화일로였다.
베네수엘라 차비스모(차베스주의)란 아르헨티나 페로니즘(페론주의)과 함께 가장 대표적 좌파 포퓰리즘으로 꼽힌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지하자원 등 천혜의 조건 속에 20세기 전반 전 세계 열손가락 안에 들던 부국, 1970년대만 해도 남미 최고 부자나라들이었으나 수십년째 빈곤을 헤맨다. ‘자원 국유화’와 ‘퍼주기 식 복지’를 거쳐 도달한 곳이란 ‘전 국민의 평등한 저소득’ 상태라고 평가된다.
마두로의 전임자인 차베스는 1999년 집권 이래 2013년 병사하기까지 석유로 벌어들인 재원을 무상 교육·의료 등 복지에 치중하며 ‘공정 가격’의 이름 아래 생필품 가격을 통제했다. 그 결과 기업 투자 저조와 성장 침체, 살인적 인플레이션, 재정 위기 등으로 국가 경제가 파산 직전에 몰렸지만 마두로는 기존 방향을 바꿀 조짐이 안 보인다. 그 뒤엔 2830만 명 인구 중 640만 빈곤층의 절대적 지지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선 자유시장경제 신봉자인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2023년 12월 취임 이후 공정가격제 폐지, 페소화 평가절하, 노동개혁, 공공부문 축소 등을 통해 페론주의 극복에 나섰다. 최종 성공할지 미지수지만 1년 만에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마두로 집권이 2031년까지 이어질 베네수엘라는 이런 희망마저 꿈꾸기 어려운 현실이다.
2020년 마두로에겐 마약·테러 유통 혐의로 1500만 달러(약 184억 원) 현상금이 걸렸으며 금년 1월 그의 취임식날 총 2500만 달러(362억 원)로 늘어났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핵심인 석유·가스 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작년 1월 재개됐으며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강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특히 베네수엘라산 에너지원이 중국으로 수출될 여지를 극력 저지할 태세다.
한편 마두로 시대 이래 베네수엘라에선 대선때마다 두 명의 대통령이 승리 선언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현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3년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에 가입하면서 전자투표 시스템이 도입됐다. 투표기로 후보를 선택하면 중앙전산망에 결과가 즉각 전송되는 구조이며, 실시간 집계 중개나 전체 투표 수 공개도 없이 투표 완료 후 선관위에서 신속하게 당선자를 발표하곤 했다. 전자투표를 이용한 부정선거라는 국내외의 비난에 일체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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