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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전단지는 40~50대 주부의 전유물처럼 여겼다. 그러나 최근 30대 부부가 전단지를 들고 다니며 장보는 장면이 흔해졌다. 백화점이 아닌 제조·유통 일원화(SPA) 매장에서 옷을 사거나 중고거래를 시작한 30대 직장인도 부쩍 늘었다.
호캉스·오마카세 등 플렉스 소비 유행을 이끌던 욜로(YOLO) 소비가 줄어든 반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요노(YONO) 소비가 눈에 띈다. 요노란 ‘하나만 있으면 된다(Yon Only Need One)’를 모토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소비 행태다.
2010년 초반 이후 미래 대비에 대한 회의감 커지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욜로’ 소비 트렌드가 자리를 잡았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You Live Only Once)’이라는 문구를 줄인 말로 소득 수준에서 벗어난 과감한 지출도 마다하지 않는 소비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치고 고금리로 부채 상환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경제적 지출 여력이 줄어든 청년들이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실용적인 소비를 시작하면서 요노 현상이 시작됐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6% 상승한 데 비해 3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소득은 6470만 원에서 6762만 원으로 1.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임금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수 밖에 없다.
수입 대비 지출이 늘어난 청년들이 의식주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요노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요노족에 불황 없는 SPA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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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高 시대’가 도래하면서 비싼 명품보다는 절약형 소비가 대세다. 욜로 트렌드로 사세가 약화했던 제조·유통 일원화(SPA·스파) 패션이 의복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양천구청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35세)는 유니클로·탑텐 등 스파(SPA·제조와 유통 일원화) 브랜드 옷을 구매해 입는다. 김 씨는 “옷을 하나 사도 좋은 거 사자주였지만, 최근 2년 사이 스파브랜드 옷들을 구매해 입는다”면서 “스파 브랜드 옷도 가격도 많이 비싸져 괜찮은 옷 입으려면 보통 10만 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스파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2022 회계연도(2022년 9월~2023 8월) 매출이 92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12억 원으로 23%가 늘었다. 순이익은 43% 증가한 1272억 원을 기록했다.
이랜드월드의 SPA브랜드 스파오도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어난 4800억 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여성 SPA 브랜드 미쏘의 2023년 매출은 1300억 원이었다. 스파오와 미쏘의 매출을 합치면 이랜드 SPA 매출은 6100억 원 수준이다. 패션부문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도 2023년 매출이 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도 2022 회계연도(2022년 2월~2023년 1월) 매출이 55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39억 원으로 71% 늘었다. 같은 기간 H&M 운영사인 에이치앤엠헤네스앤모리츠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2%·80% 증가한 3368억 원·166억 원을 기록했다.
중고 의류도 인기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중고 패션 카테고리의 유료 거래액은 약 64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0% 늘어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용자 78%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관악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30)는 최근 중고플랫폼 당근을 시작했다. 김모씨는 “입지 않는 패딩 3개를 모두 당근에서 팔았다”며 “패딩을 5년 넘게 입어서 누가 살 사람 있을까 하면서 올렸는데, 패딩 올리자마자 구매자가 나타났다”고 웃으며 본인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외식 대신 집밥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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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537명에게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설문 조사한 결과, 절약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외식·배달 음식 대신 집밥으로 해결하기’(40.7%·복수 응답)가 1위로 꼽았다.
홈플러스 채소매장에서 만난 영등포에 거주하는 30대 부부는 홈플러스 ‘AI 물가안정 프로젝트’ 전단지를 들고 다니면서 할인되는 제품을 위주로 구매하고 있었다. 부부는 “대형마트 전단지는 보통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고령자들의 참고용으로 인식돼 있는데, 우리 부부가 전단지를 참고해 장을 볼거라는 상상을 해본적이 없다”면서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들 부부는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혔다.
한 끼에 1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파인다이닝·오마카세 등이 SNS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하면서 욜로 트렌드를 대표하는 소비문화로 자리잡았으나 그 열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30세대가 직접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집에서 요리를 해먹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작년 2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에 따르면 2분기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75.60으로 1분기(79.28) 대비 3.68p 하락했다. 특히 주점업의 하락세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인 2022년 2분기 92.04로 큰 폭으로 상승했으나 2023년 4분기 70.06으로 외식산업 세부 업종 중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먹거리 소비를 줄이기 위해 2023년까지만 해도 인기를 끌었던 밀키트 소비도 감소했다. 실제 2024년 한 해 롯데마트 밀키트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소폭 감소했다.
밀키트 시장은 급성장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3조40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HMR 시장은 2022년에 5조 원을 돌파(5조8500억 원)했다. 2023년에는 시장이 더욱 커져 6조5300억 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될수록 외식이나 밀키트 비용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의 집밥 선호가 자리잡았다.
주거비 상승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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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요노 소비의 이면에는 지갑이 얇아진 2030세대의 경제 상황이 있다. 39세 이하 가구주의 2023년 평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연 1671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6% 올랐다. 더불어 3곳 이상 금융회사에서 동시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가 국내에 447만3000명이다. 이 중 2030세대가 무려 31%를 차지하는데 숫자로는 139만 명이다. 이들의 대출 잔액은 2020년에 비해 29%인 34조4000억 원이 증가해 현재 갚아야 할 돈이 155조1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20~24세의 74%·25~29세의 44%·30~34세의 31%·35~39세의 29%가 월 250만 원 미만의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받는 상황에서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으로 1만 원을 넘겼다. 하지만 상승률은 전년 대비 1.7%에 그쳐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사회초년생 한모씨와 박모씨는 양가 도움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서울에서 신혼집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모씨는 “지금 거주하는 오피스텔에서 신혼을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면서 “일단 결혼식을 하고 둘이서 돈을 모아 전셋집을 알아봐야 될 것 같다. 지금 당장 전셋집을 알아보기엔 수중에 돈이 없다”고 토로했다.
2024년 9월 기준 서울의 연립·다세대 원룸 평균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73만 원이다. 2024년 1~10월 기준 서울 오피스텔의 월세 평균 보증금은 5751만 원으로 작년(4051만 원)보다 42% 상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이 월 286만 원, 대기업은 591만 원이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이 월급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면 저축도 힘든 시대인 것이다.
고물가 부담을 느끼는 청년들은 주거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자동차 등에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서울시의 교통 이용 통계에 따르면 버스의 일평균 이용 건수는 2020년 390만 건에서 2023년 440만 건으로 증가한 반면, 택시의 일평균 이용 건수는 2020년 76만 건에서 2023년 57만 건으로 약 25% 감소했다.
이는 운송 서비스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해 가계 교통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용료가 저렴한 버스 이용객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20~30대의 일평균 택시 이용 건수는 21% 줄어 다른 연령대(3% 감소)보다 큰 감소폭을 보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에 따르면 2023년 20~30대의 수입 신차 등록 대수는 4만8000대로 2022년 5만9000대 대비 17.9% 감소했다. 20~30대의 수입 신차 등록 비중 역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20%를 하회한 17.8%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과 상품성을 갖춘 브랜드가 요노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크게 성장하고 있다”며 “고물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요노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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