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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이 7일로 6개월째 접어든다. 전쟁을 진두지휘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제사회의 비난과 국내 퇴진 압박에 시달리며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가자지구에서 구호음식 전달 활동을 벌이던 월드센트럴키친(WCK)의 다국적 민간활동가 등 7명이 공습으로 사망한 후폭풍 또한 거셀 전망이다.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에서 부인 질 여사의 반대 의견을 소개했다는 3일(현지시간)자 뉴욕타임스(NYT) 기사도 주목을 끌었다.
의도적 오폭?
의도적 오폭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교신하며 활동해 온 WCK이 피격 당할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시각이다. 이스라엘군이 오폭을 인정하며 조사 및 재발방지를 약속했으나 네타냐후 총리의 석연치 않는 태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실수로” “비극적인 일”이라고는 했으나 “전쟁 중에 발생한 일” 대목에선 마치 ‘전쟁 때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들릴 수 있어 논란이다.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인 네타냐후는 작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안보 실패로 치명상을 입었으나, 하마스 소탕과 인질 귀환을 위한 지상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며 권좌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쟁을 이용해 임기를 연장한다는 국내외 비판이 나오고 최근엔 네타냐후 내각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 등 연일 성난 민심의 표출이 이어져 총체적 위기에 몰린 모습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누적 재임 기간은 16년이 넘는다. 1996년 처음 총리(임기 3년)에 올라 2009~2021년 다시 총리가 됐다. 부패 혐의로 실각했으나 기존 정치권이 거리를 두던 극우파와 유대인 초정통파 세력을 규합한 우파 연정으로 2022년 12월 가까스로 권좌에 복귀해 6번째 총리 임기를 수행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에 강경 대응하며 안보를 중시한 매파 이미지를 내세워 장기 집권에 성공했지만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안보 실패'로 꼽힌다. 하지만 외부의 적에 맞서 일단 단결하자는 여론을 등에 업고 하마스 소탕과 인질 석방을 위한 대대적인 지상전에 나서면서 정치생명을 연장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반년 다되도록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110여 명의 귀환이 미뤄지고, 하마스 완전 소탕 목표의 달성도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커지면서 이스라엘 내부에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거듭되는 중이다. 이스라엘군 작전으로 가자지구에서 3만3000명 이상 사망한 상황에서 우방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처음으로 채택됐다.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오폭으로 WCK 소속 폴란드·호주·영국, 미국·캐나다 이중 국적 직원과 팔레스타인 통역 등 7명이 사망하자 국제사회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국제사회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을 중단하라 촉구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작전을 진행할 것”이라며 강행 입장을 견지해 왔다. 최대 우방인 미국과도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두고 불협화음이 이어진다.
미 정보기관을 통솔하는 국가정보국(DNI)이 지난달 11일 의회에 제출한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에서 “팔레스타인과 안보 문제에 강경책을 추구하는 극우 정당들과의 연립정부뿐만 아니라 네타냐후의 지도자적 생존능력도 위태로운 처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전부터 이미 높던 네타냐후 불신이 대중 전반에 심화했다”며 “네타냐후의 사임과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전망대로 퇴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가자전쟁 발발 후 최대 시위대 규모인 10만여 명이 의회 앞에 모여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연정 퇴진을 요구했다. 인질 가족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석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를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반역자”로 지칭했다. 야당은 조기 총선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주요 라이벌이자 중도파 야당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가 3일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전쟁 발발한 지 약 1년 되는 9월께 조기 총선을 치르도록 “합의된 날짜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권 리쿠드당이 “지금 선거를 치르면 사회가 마비되고 분열돼 라파 전투와 인질협상 가능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에마뉘엘 나본 텔아비브대 교수는 “네타냐후가 여러 번 정치적으로 매장됐다가 되살아난 적이 있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그가 30년간 이스라엘 정치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이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호소력 때문이었지만 작년 10월7일 그것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다만 조기 총선을 통한 정권 교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기드온 하라트 히브리대 교수는 “적어도 지금은 네타냐후가 교체되지 않을 것 같다”며 “전쟁이 계속되는 한 네타냐후가 선거 실시 불가를 말할 수 있고, 항상 총리직을 유지하기 위한 명분을 찾는 그로선 지금이 그런 명분”이라고 분석했다.
질 바이든 여사도 한마디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을 접한 이후 비통과 격분을 표하며, 이스라엘 지지자인 남편에게 ‘이제 그만하라’ 의견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현지시간) NYT가 전날 무슬림 공동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비공개 백악관 초청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NYT가 다른 참석자 말을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아내가 불만이 커 백악관 행사 참석도 못마땅해 했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이해한다면서 최근 자신도 부인 질 여사로부터 가자지구 분쟁과 관련해 “그만, 당장 그만둬요, 조”라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흑인무슬림리더십협의회(BMLC)의 설립자로 이 행사에 참석했던 살리마 서스웰은 영부인이 가자지구 문제에 이런 강한 감정을 표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대통령의 언급을 메모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지지·지원해왔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 행보로 민간인 사상자 규모가 커지자 최근 미국 민주당과 정부 기관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참모이자 백악관의 막후 실세로 불려 온 질 여사가 이렇게 강한 어조로 반대 의견을 표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차원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NYT는 질 여사가 정책 및 정치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확고한 의견을 제시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실제 교육학 박사인 질 여사는 대학 강사를 하던 고학력자다.
백악관 당국자 “바이든 대통령 부부에 이견은 없어”
해당 발언에 대한 질문에 백악관 당국자들은 가자지구 문제 관련해 대통령 부부 사이에 이견은 없으며, 영부인이 이스라엘에 하마스 대응 노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질 여사의 공보관 엘리자베스 알렉산더가 성명에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부인도 구호 인력을 겨냥한 공격과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무고한 인명 손실에 상심하고 있다”며 “그들 모두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질 여사의 이런 반대 의견 표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스라엘 지원 정책을 바꾸도록 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질 여사의 ‘그만하라’ 발언을 소개한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전날 국제구호단체 WCK 활동가 등 7명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한 것에 “격분과 비통”함을 밝혔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가자지구 상황과 관련한 바이든 대통령의 분노와 슬픔이 최근 몇주일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했다. NYT는 질 여사가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결정을 지지하는 등 과거에도 해외 분쟁에 미국 개입을 반대해 왔으며, 장남 보가 2008년 이라크에 파병됐던 일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1972년 바이든의 첫부인과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동승했던 아들 둘만 살아남았다. 5년 후 당시 바이든 상원 의원과 재혼한 질 여사는 딸 애슐리를 낳았으며 장남 보(2015년 뇌종양 사망)와 차남 헌터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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