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이태진 학문은 사학이 아니고 역사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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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의 원로 이태진 고종·대한제국 눈먼 찬양
‘국뽕 사학’ 폐해 넘어 민중사학 2중대 노릇 자청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13 06:35:00

요즘 논란 속의 서울대 명예교수가 두 명이다. 그중 한 명이 독불장군처럼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퍼뜨리고 있는 서균열(67)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 대가로 그는 국민선동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하지만 국사학자 이태진(80) 서울대 명예교수가 더 문제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서균열 못지않게 사회적 해악이 큰데도 누구 하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왜 그가 문제인가? 무엇이 숨은 쟁점인가? 그가 올해 초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근현대사 특강’ 시리즈부터 가관이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다. 지난 30년 이른바 민중사학으로 똘똘 뭉친 국사학이 반(反)대한민국 성향으로 치달아 왔지만 그걸 저지·해체해야 할 이태진이 민중사학 못지않은 시대착오적 담론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 말이 필요없다. 그는 전근대사회에 불과했던 500년 전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이 지금 세계 10위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초석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든다. 갖다 붙이기 선수급의 황당 궤변에 소가 다 웃을 일이다. 일테면 그는 고종이 표방했던 ‘교육을 통한 국민 창출 노선’을 평가하면서 그게 훗날 20세기 항일은 물론 경제개발과 독재에 맞서는 힘의 원천이라고 찬양했다.

그게 청일전쟁이 막판으로 치닫던 1895년에 반포된 ‘교육 조칙’의 의미라는 것이다. 논리 비약도 유분수다. 당연히 이태진은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좌빨들의 도그마인 자생적 근대화론, 즉 자본주의 맹아론을 그 시리즈에서 대놓고 옹호한다. 민중사학을 반대하는 척하지만 그들과 사실상 한 몸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일제 침략이 없었더라면 대한제국 시절의 경제는 번성했을 것이란 예측도 거침없이 펼치는 게 그의 수준이다.

그렇게 신문 지면 한 면씩에 시리즈를 연재하는 그는 과연 멀쩡한 학자인가? 물론 우리들은 안다. 그는 오래 전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란 책을 펴냈던 인물이다. 망국(亡國) 군주 고종을 비운의 계몽군주로 포장하는 데 공헌해 온 게 바로 그 책이고, 이태진이다. 그는 너무 나갔다.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려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조선시대·대한제국 찬양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놀라운 건 이태진의 사회적 성공이다. 지난 30년 한국사학의 주류는 이태진 스타일을 따라서 조선시대를 ‘아름다운 유교 국가’로 포장하는 데 여념 없었다. 민중사학이건 아니건 똑같다는 뜻이다. 그 통에 조선 왕조는 유교적 민본주의에 입각한 일종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 둔갑했다. 지긋지긋한 당쟁도 일종의 정당 정치이며 성리학의 보급에 따라 민권 의식의 고양이 이뤄졌다는 식으로 한국사를 왜곡한다.

그렇게 멋진 조선을 강도 일제가 침탈했으니 일본에 대한 분노도 마구마구 키운다. 국사학은 그 결과 민족 찬양과 반일 선동의 ‘국뽕 사학’ 내지 ‘역사 동화’로 변질됐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이 이태진과 민중사학의 사실상 합작이다. 그런 이태진에게 헐거운 지면을 내주는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도 역겹기 짝이 없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런 이태진은 이중적이다.

일테면 그는 정년퇴임하던 2009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1면 머리기사로 올라온 대담에서 “좌편향 교과서를 비판하지 못한 역사학계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백했다. 민중사학이 “역사학을 너무 정치화했다”고 그는 근엄하게 개탄했고, 당시 가장 좌편향화된 것으로 지목된 금성사 역사교과서를 “선을 넘었다”고 규정했다. 직후 그는 국사편찬위원장에 덜컥 임명됐다.

그렇다면 민중사학의 물결로부터 국사학을 보호하는 게 그의 임무인데, 이후 이태진은 뭘 했나? 엉뚱한 짓만 골라서 했다. 그는 몇 해 전 박근혜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헌법가치 훼손”이라며 반대하는 성명서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대체 이게 뭔가? 그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이용당한 것이 아니라 숫제 그들의 품에 안긴 꼴이다.

그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 한 지식인의 과오가 국가적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금언이다. 내가 볼 때의 이태진의 반(反)식민사학은 근대적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 아니고, ‘역사 동화’의 황당한 세계다. 당연히 일국사(一國史)에 너무 매몰돼 끝내 ‘국뽕 사학’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문제의 국뽕 사학은 민중사학의 숙주로 전락한 것이 오늘의 현주소다.

유감천만이다. 그는 끝내 주사파 역사학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이태진은 그걸 부끄러워할 줄 모른 채 나이 80세가 넘어서도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 그가 멋대로 놀도록 말도 안되는 멍석을 깔아 주는 중앙일보도 반성해야 한다. 왜 당신들이 한국사회의 퇴행을 부추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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