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4> 브란트 서독 총리 최측근 ‘귄터 기욤’은 동독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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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30 06:31:00

1956·57년 서독 연방정보부(BND)는 동독 국가안전부(MfS·약칭 슈타지)가 보낸 3건의 단파방송 지령에 주목했다. 하나는 1956년 2월1일 ‘게오르그’에 보낸 생일축하 인사였고, 10월6일에는 ‘Chr’에게 보낸 생일축하 인사였다. 1957년 4월 중순에는 “두 번째 남자를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연방정보부·연방헌법보호청(BfV) 등 서독 정보기관들이 무려 18년간이나 추적한 스파이가 있었다.

1974년 4월24일 서독 연방범죄수사청(BKA) 요원들이 본(Bonn) 소재 고급 아파트를 급습하여 귄터 기욤과 그의 아내 크리스텔을 체포했다. 기욤은 체포되자 “나는 동독군 장교이자 국가안전부 요원이다. 장교로서 나의 명예를 존중해 달라”고 당당히 말하며 자신이 스파이임을 인정했다. 체포 당시 기욤은 빌리 브란트(Billy Brandt) 서독 총리의 핵심 보좌관이었다.

귄터 기욤(Günter Guillaume·1927~1995)은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했는데 영국군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경력도 있다. 베를린에서 출판·언론계에 종사하다 1954년 슈타지에 채용되어 훈련 끝에 같은 슈타지 요원인 부인과 함께 1956년 동독 탈출 피난민을 가장하여 서독에 이주해 합법 신분을 획득한다. 그의 코드명은 ‘한센(Hansen)’이었으며 부인의 코드명은 ‘하인츠(Heintze)’였다. 기욤 부부는 동독 슈타지 소속 해외공작총국(HVA)의 장교로 서독에 침투한 스파이였다. 18년 전 방송 지령에서 언급된 ‘게오르그’가 기욤이며, ‘Chr’은 그의 부인인 크리스텔(Christel Boom), ‘두번째 남자’는 이들 부부의 아들 피에르(Pierre Boom)였다.

기욤은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평범하게 담배와 주류판매 가게를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했다. 1957년에 사민당(SPD·사회민주당)에 입당하여 정당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가 성실성과 업무처리 역량을 인정받아 사민당 프랑크푸르트 지역 소구역 책임자(1964년)·사민당 시의회 원내교섭단체장(1968년)으로 활동한다. 주로 사민당의 보수파에서 경력을 쌓았다.

1969년 그는 연방총리실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를 총리실에 추천한 인사는 후에 서독 국방부 장관이 된 게오르크 레버다. 처음에는 총리실의 경제·금융·사회 정책 부서에서 일했다. 1972년에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비서가 되어 최측근 그룹 4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하게 돼 거의 모든 현안 문서와 심지어 총리의 사생활에까지 접근하게 된다. 당시 이를 보고받는 슈타지 해외정보국장이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다는 일화도 나돈다. 이들 정보는 당연히 동독으로 넘어가게 된다. 당시 언론은 기욤의 직속 상관인 마르쿠스 볼프(슈타지 해외공작국장)가 서독 총리의 귓속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고 비유했다.

▲ 귄터 기욤과 그의 부인 크리스털 붐은 서독 정권의 핵심 심장부까지 침투하여 활동한 동독 스파이였다. MDR 캡처

기욤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의 경제발전과 동독·동유럽과의 화해로 상호 발전을 꾀한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독일판 햇볕정책)을 곁에서 목격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이념과 동독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1973년 연방헌법보호청은 기욤 부부를 간첩으로 지목하고 지속적 감시를 통해 간첩 행각을 확인한다. 그리고 1974년 4월24일 기욤과 그의 부인은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 기욤은 1975년 중대 반란죄 등으로 13년형, 그의 부인은 8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1981년 동·서독 간의 스파이 교환에 따라 기욤 부부는 동독으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기욤 부부가 체포되고 2주 후인 1974년 5월 빌리 브란트 총리가 사임했다.

기욤은 동독에 귀환해 영웅이 됐다. 슈타지는 기욤을 ‘평화의 정찰병’(Kundschafter des Friedens)이라 치켜세우고 훈장 등을 수여하며 국가 영웅으로 대우했다. 기욤의 활약상을 담은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임무 완수’를 제작하여 슈타지 학교에서 교육 훈련용으로 활용하고 기욤은 그의 활동에 대해 강의했다. 기욤은 동독이 패망할 때까지 최고의 스파이로 기록되었다. 최근 슈타지 등의 문서가 공개되면서 일부 평가 절하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독 정권의 핵심 심장부까지 침투해 활동한 사실은 스파이사(史)의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기욤은 귀환 직후 15세 연하의 슈타지 간호사와 불륜에 빠져 부인과 헤어지고 재혼했다가 1995년 암으로 사망했다.

서독 연방헌법보호청은 기욤 사건과 관련하여 동독 간첩이 제재를 받지 않고 국가 핵심부인 총리 비서실까지 침투했다는 것과 그의 스파이 활동을 폭로했어야 할 정부 기관이 제 때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동·서독 분단 시절 발생한 기욤 사건은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타산지석이 된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실은 안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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