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그 나라의 농업을 보면 알 수 있다. 21세기의 농업은 선진국에 특화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과거엔 자산이 땅뿐인 저개발 국가들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운명처럼 대물림된 산업이 농업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농업은 바이오 과학기술·자본·영농·농공·물류·시장·특허·예술 등이 복합된 산업으로 땅만 있다고 잘해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반도체나 AI·2차전지 등의 첨단기술 산업이 가공할 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농업도 이에 못지않은 비중을 지닌다. 농업은 엘리트들이 즐비한 벤처기업들의 활동무대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해 내는 가운데 과수, 특히 감귤 과수가 경쟁력을 가지는 모습을 보면 농업 환경과 기술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선진적 농업의 마지막 퍼즐이 바로 예술일 것이다.

‘감귤박물관’의 전시 사업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이다. 예술과도 긴밀하게 협력하여 동반상승의 효과를 창출하니 이것이 바로 우리 농업을 선진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으며, 이것이 곧 농업의 발전상이라 할 수 있다. 제주 김귤박물관에서 열리게 되는 아주 이색적인 테마의 ‘감귤 아트’전(11.1~12.31). 디스플레이를 막 마치고 이제 개막을 앞둔 전시 현장은 아직도 부산하다. 다년간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해 온 기획자(이진)도 ‘감귤 아트’가 하나의 장르로서 선을 보인다는 점에서 상기된 표정이다. 특히 과거의 화려했던 감귤 농업이 이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의미 있는 걸음을 뗀다는 점에서 당위성을 역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차 다른 농업 분야에도 적용·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농업 발전에 일조하고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하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감동적이다.
‘감귤 아트’란 제주 감귤의 다양한 생태와 식생·역사·유형을 비롯해 감귤과 관련된 지역사회·지역인들의 삶 등이 다양하게 조명되고 반영되는 예술 창작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울러 부가적으로 창조되는 아트 상품과 각종 디자인 컨텐츠 등을 망라한 것이 감귤 아트의 범주라 할 수 있다. 우리 미술이 이제는 이토록 광범위한 산업과 생활 전반을 아울러 융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 농업이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고품격·고부가가치의 문화산업의 영역에 진입해 있는 현재의 단계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 처한 감귤에 예술의 옷을 입힌다는 것, 생체 구석구석에 산소가 필요하듯 우리 사회 곳곳에 예술이 편재하게 한다는 것은 양자 모두에 동반상승의 효과를 내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우리 작가들이 감귤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고 또한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회화·판화·사진·입체·염색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만들어 내는 컨텐츠와 굿즈들은 보통의 전시장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어신(입체)·전재호(사진)·샐빛(일러스트페인팅)·홍송희(섬유페인팅)·남천우(판화) 등 5인의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는 어떠한 감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를 미리 살펴본다.

어신 작가 종이의 마술사라 불릴 만한 솜씨를 지녔다. 조랑말과 귤을 합성하여 ‘조랑귤’이라는 동화적 상상력이 번득이는 서사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보름달 뜬 밤에 귤들이 말로 변하여 풀을 뜯어 먹는다는 창작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종이 입체작품들이다. 큐브 속 풍경 등의 실루엣 이미지들은 상품으로서도 탁월한 감각을 보이고 있다.

전재호 사진작가 감귤 농사에 평생을 바쳐 온 5인의 할머니 모습을 렌즈에 담고 있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신화 “귤 농사로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켰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다. 전통 갈옷 차림과 산맥처럼 골진 주름살의 디테일에서 제주의 굴곡진 역사와 삶을 느끼게 한다. 전시공간 벽면 전체에 연출되는 거대 이미지들에서 뿜어지는 아우라가 압권이다.

샐빛 일러스트페인팅 작가 보통 자주 접하게 되는 극사실적 보태닉(botanic) 페인팅 장르와 연필 드로잉을 결합한 독특한 일러스트레이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여러 종류의 감귤나무를 탐스럽게 표현하고 있으며, 꽃·열매·잎들 사이로 소녀의 이미지가 어우러짐으로써 상큼하고 발랄한 시각 효과를 고조시킨다.

홍송희 섬유페인팅 작가 오일 마블링과 유사한 에브루(ebru) 기법으로 감귤의 이미지(나무·꽃·귤 단면 등)를 자연스럽게 구현해 내는 페인팅을 선보인다. 주로 패턴 중심인 에브루에 재현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결합으로 화면은 더 깊이를 갖게 되고, 아울러 유려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스카프·우산 등의 다양한 상품으로 응용되고 있다.

남천우 판화작가 작가의 필치가 잘 드러나는 리도그래프로 서정성 넘치는 감귤 수목의 풍경과 감귤 이미지의 정물 등을 감칠맛 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실적인 도감(圖鑑)류 일러스트도 병행하여 상품으로의 응용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아주 오래전 필자는 현무암 조약돌 하나를 가방에 넣고 오려다 공항에서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 제주는 돌이든 식물이든 무단 외부 반출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후 제주는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보존해야 하는 섬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약돌 하나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보물 같은 섬으로 말이다.
이후론 제주에서 온 것이라면 물 한 모금조차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었다. 따라서 귤 하나도 흔하디 흔한 과일 중의 하나가 아니다. 보물 같은 자연환경과 토양이 준 명품과도 같은 것이다. 예술의 옷을 입힐 가치가 있는 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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