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7º
습도 80%
춘천 26º
습도 80%
대전 24º
습도 100%
)
정부의 대미 외교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8일 예정된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종료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정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에 이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까지 급파하는 ‘올코트 프레싱’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한국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직면해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한마디로 ‘준비 없는 땜질식 대응’이라는 평가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관세 협상이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던 정부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외면한 채 추경 의결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막판에 와서야 급하게 고위급 인사들을 연이어 파견하는 모습에서 체계적인 협상 전략의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럼프의 양면 전술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전략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친애하는 일본(님)’이라 부르며 압박했던 것처럼, 한편으로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양면 기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러한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상황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
특히 위 실장의 갑작스러운 미국 급파를 통해 관세 협상에서 방위비 분담금까지 패키지로 묶어 협상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드러난 셈인데, 이는 충분한 검토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한미동맹의 비용 분담과 안보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의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불과 몇 개월 전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방위비 재협상론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 당사자다. 당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은 굴욕 외교”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이 이제는 직접 그 카드를 꺼내들고 있으니, 스스로 낯 뜨거워지지 않는지 묻고 싶다.
문제는 시간이다. 트럼프는 급할 것이 없지만 한국은 매우 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예고된 12개국에 대한 관세 서한 발송이 이뤄진 상태에서 한국이 이 명단에 포함될 경우 10%에서 7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감당해야 한다. 시간에 쫓겨 협상하는 측이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협상의 기본 원리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가 제시하는 소위 ‘제조업 협력 로드맵’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정부는 양국 간 긴밀하게 연계된 상호보완적 산업 공급망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한미 제조업 협력 비전을 제안하고, 자동차·철강 등 품목관세의 철폐 또는 완화를 포함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양측이 선의에 기반한 협상을 이어 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트럼프의 ‘탑다운’ 협상 방식을 고려하면 실무진 차원의 협상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이재명정부의 대미 외교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다. 미국에 굴복하면 좌파 진영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고, 강경하게 맞서면 경제가 파탄 날 위험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마이너스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근본적인 원인은 체계적인 대미 전략의 부재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외교·통상·안보에 있어 임기응변식 대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과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는 차원을 넘어서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1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