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1º
습도 40%
광주 31º
습도 35%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논쟁이 재점화 되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앞세운 금지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반대 논리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해당 논쟁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국가가 지켜야 할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그리고 한반도의 특수한 남북관계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정면으로 맞서는 지점에 놓여 있다.
전단 살포의 금지 여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격히 변화해왔으며, 이는 법률, 인권,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면 금지를 재추진하는 입장이다.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남북관계발전법’ 위헌 결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되, 접경지역 주민 보호를 위한 입법적 보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직접 처벌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다른 법령을 활용해 사실상 ‘우회 처벌’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연천·파주 등 접경지역에서는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강하게 호소하며 물리적 저지 행동까지 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 불안, 생활 피해, 군사적 긴장 고조 등이 맞물린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정권 따라 달라진 대북전단 정책
대북전단 금지법을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쟁의 핵심에는 두 가지 헌법적 가치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1항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전단 살포 옹호론자들은 북한 주민에게 외부 소식을 알리고 북한 인권을 옹호하는 자신들의 행위가 헌법적 권리의 정당한 행사라고 주장한다. 반면, 접경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전단 살포 반대론자들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맞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대북전단 살포는 사실상 묵인 또는 방조됐다. 북한 인권을 알리는 탈북민 단체들의 활동은 비교적 자유롭게 진행됐고, 경찰과 군이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들 정부는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총 11차례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 시도를 저지했지만, 주로 북한의 대남 위협이나 접경지역 주민과의 충돌 가능성에 따른 조치였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평화 기조 속에서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렸던 대북전단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2020년 추진했다. 살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 군사적 충돌 가능성, 남북 합의 이행 필요성을 근거로 ‘전단 살포 금지’를 법제화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큰샘, 물망초 등 27개 북한 인권 단체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2020년 12월 29일 대북전단 금지법 공포 직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이야말로 북한 인권 증진의 핵심”이라며, 대북전단 금지법은 북한 정권의 정보 통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률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대북전단 살포가 일부 재개됐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도 다시 커졌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 도발이 이어지자, 현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금지 조항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살포를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항공안전법’(풍선 무게 2kg 초과 시), ‘재난안전법’(지자체장 허락 없는 위험구역 출입 시), ‘고압가스안전관리법’(수소·헬륨 등 고압가스 운반 자격 미달 시), ‘공유수면법’(페트병 등 폐기물 해상 투기 시) 등 기존 법률을 적용해 우회적으로 전단 살포를 규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실제 접경지역에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량을 세우거나, 금지된 비행장치(드론 등)를 사용하는 행위, 군사시설 인근 진입 등을 문제 삼아 제재하는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엄중 조치’를 지시하며, 처벌 강화를 위한 재입법 추진과 접경지역 경찰력 배치를 천명했다. 정부는 8·15 광복절 전까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같은 도발로 고조된 남북 긴장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소모적 적대 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분위기 조성”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전단 살포를 전면 통제하고 형사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이지, 국민의 생명·안전을 고려한 살포 중지 요청까지 제한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회 처벌 논란과 정치적 이해관계
이 같은 접근은 남북관계발전법의 위헌 조항을 대체할 새로운 입법 없이도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차단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헌재의 결정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다는 근본 취지를 정부가 무시하는 것”이라며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집권하자마자 북한 정권에 위해가 되는 탈북자들의 입부터 틀어막으려는 것 아니냐”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탈북민들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도 이 자유의 일부”라며 “정부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옹호하는 진영은 주로 ‘표현의 자유’와 ‘북한 인권’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를 강조한다. 탈북민 단체 및 납북자 단체들은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정권의 실상을 비판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납북 피해자 6명의 사진과 설명이 담긴 비닐 소식지 다발(무게 2kg 이하)을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16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고교생 때 납북된 피해자들의 어머니를 불러 위로한다면 전단 살포를 그만두겠다”며 “납북된 고교생 피해자들의 어머니인 90대 김태옥 씨와 김순례 씨를 만나 밥 한 끼만 함께해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오랜 세월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적 차별 속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과거 연좌제 등 국가 폭력으로 인해 2차 피해까지 입었다는 입장이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납치된 전후 납북자는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사람만 5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파주·연천에서 벌어진 살포 저지 ‘현장 충돌’
대북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진영은 주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과 ‘국가 안보 위협’을 핵심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경기 파주·연천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피해와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표현의 자유가 곧 포격의 공포라는 것이다. 2014년 북한이 대북전단을 이유로 고사총을 발사한 사건, 최근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날아든 사건들은 그들에게 단순한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뒤흔드는 위협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A씨는 “전단이 날아가면 북한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이미 다 안다”며 “전단 살포 단체가 아닌, 위험은 우리(접경지역 주민)가 짊어진다”고 항변했다. 파주시 주민 B씨는 “전단이 날아간 다음 날 북한에서 포를 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사적 도발의 불안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포격 공포 속에서 살지 않을 권리는 지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살포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팽팽한 대립은 접경지역에서 물리적 충돌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4월 23일 경기 파주에서는 대북전단 살포 강행과 트랙터 등을 동원한 접경지 주민의 저지가 맞서는 장면이 벌어졌다.
연천 주민들은 “과거 대북전단 살포로 북한의 고사총 사격 도발을 당한 바 있는 연천 지역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는 행위는 전쟁을 조장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연천 지역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내란에 준하는 통탄할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파주 시민단체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 등은 실제로 살포 현장에서 트랙터로 단체 주변을 감싸거나, 집회를 열고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선언하는 등 저지 행동에 나섰다.
전문가들의 입장도 첨예하게 갈린다. 평양 출신 탈북민 이현승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정보가 극도로 차단된 사회이기 때문에 외부 정보(전단 등)의 가치가 매우 크다”며 “북한 주민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단 유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북전단이 적극 금지되어야 한다고 본 접경지역의 자치단체장 중 하나인 정하영 전 김포시장은 표현의 자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기는 하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서 야기될 수 있는 군사적 긴장과 도발이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명과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파주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불법 물질 반입 시 현행범 체포 △불법행위 발견 즉시 고소·고발 △살포 단체 관계자 출입 금지 및 퇴거 조치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특별사법경찰단 투입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파주시는 “시민 안전과 모처럼 찾아온 대북 화해 기류를 해치지 않도록 전 행정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