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박쥐·물고기도 상호 협동·협업하는데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7 00:02:50

인간이나 동물이나 행위의 추동력은 개체의 이익이다. 동물 세계에서 한쪽이 호의를 베풀면 혜택을 본 상대는 나중에 그 호의에 보답한다. 기억할 줄 알고 답례할 줄 아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양쪽의 생존율은 동시에 높아진다. 따라서 동물 세계이든 인간사회이든 간에 상호 협동은 자주 관찰된다.

흡혈박쥐는 낮에는 쉬고 밤이 되면 동물을 찾아가 피부에 상처를 내어 몰래 피를 빤다. 흡혈박쥐는 매우 불안정한 방식으로 먹이 획득을 한다. 때로는 적당한 대상을 찾지 못할 때도 있고 들켜서 피를 먹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성숙한 개체는 10일에 한번, 미숙한 개체는 3일에 한 번 정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는 일이 일어난다. 이 심각한 문제는 동료의 동냥젖으로 해결된다.

박쥐는 한곳에 여러 마리가 함께 서식한다. 주로 혈연으로 이루어진 사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웃도 같이 산다. 노련한 개체가 굶는 이웃을 위해 많은 피를 먹고 와서 토해 내면 굶고 있는 다른 박쥐를 먹일 수 있다. 박쥐는 60시간 이상 먹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피를 먹은 박쥐는 굶은 박쥐를 먹인다. 박쥐는 자신에게 피를 나눠 준 박쥐를 잘 기억해서는 다음 번에 똑같이 보답한다. 만약 이기적인 박쥐가 얻어 먹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 협동은 깨질 것이다. 박쥐의 수명은 8년 정도로 제법 길기 때문에 이러한 동냥젖 전략이 박쥐에게 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박쥐들이 서로 털을 손질해 준다는 사실이다. 영장류처럼 그들도 상대의 깃털을 정성껏 다듬어 준다. 털을 손질하면서 동시에 위장 부분을 눈여겨 살핀다. 만약 피를 먹어 배가 불룩한데 굶는 이웃에게 나눠 주지 않는 개체가 있다면, 이 동냥젖 협동에서 제외되어 생존이 힘들어질 것이다. 상호 호혜성이 실현되려면 이처럼 관계가 길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서로의 만남이 여러 번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협동이 잘 유지된다.

바다 밑에는 세척장이 있다. 40종이 넘는 작은 물고기와 56종의 새우가 대형 물고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특정 장소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고기와 새우들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쌔게 헤엄을 치면서 호객 행위를 한다. 고객들은 이 장소를 기억하고 먼 바다에서도 찾아온다. 어떤 고객은 몸 색깔을 바꿔서 서비스를 청한다. 몸집이 클수록 청소가 중요하다. 대형 물고기가 청소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상처와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형어들은 사냥 만큼이나 청소에 정성껏 시간을 투자하며 병이 나거나 상처를 입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어를 찾는다. 손님이 많으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한다.

대형 어종의 청소 본능은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족관에서 6년간 자란 몸길이 120cm의 대형 열대 물고기 그루퍼에게 청소 물고기를 던져 준 일이 있다. 수족관에서 항상 먹이를 받아 먹던 그루퍼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놀랍게도 처음 보는 청소 물고기에게 입과 아가미를 벌려 청소를 요청했다. 이 행동은 청소어를 인식하는 본능을 말해 준다. 물론 수족관에서 자란 그루퍼에게는 청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세척장에서 일하는 작은 청소어의 크기는 대형어의 먹잇감 정도이다. 그런데도 고객인 대형어는 예의를 갖추고 인내하며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대형어는 청소가 끝났다 싶으면 신호를 보내 주고 청소어는 얼른 마무리를 하고 자리를 뜬다. 대형어의 입과 아가미를 깨끗하게 해 주면서 청소어는 자연스레 먹고산다. 물론 이 일은 대형어가 순간 자신을 먹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숙련된 청소어의 존재가 대형 물고기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먹이는 사냥하면 될 것이지만 유능한 청소어는 지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협동의 핵심은 쌍방 관계의 지속성이다. 대형 물고기에게는 특정한 산호초 지역에서 청소어들을 언제나 계속 만날 수 있다는 신뢰감이, 작은 청소 물고기에게는 단골 고객에 대한 믿음이 서로 간의 협동과 상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단기 만남에서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상대를 후려쳐서 자신의 이득만 취해도 그만이다. 인간은 거대하고 복잡한 친족 관계와 사회 조직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상대에게 등을 보이면 그치지 않는 상호 보복의 맞대응이 이어질 수 있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호혜주의를 통해 번성해 왔다. 교환과 교역과 거래는 인간의 본성과 맞물려 있다. 그것이 원활하지 않다면 인간이 물고기만 못한 것이다.

최문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시대의 금기를 깨는 정론지 스카이데일리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정기 후원 독자께는
스카이데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초대, 할인 혜택 등을 드립니다.

매월 5만 원 이상 정기 후원 독자께는
스카이데일리 신문과
스카이데일리가 발행하는 최신 단행본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