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이 기자의 책캉내캉] “형, 인생이 왜 이래?” 조영남, 쇼펜하우어에게 태클을 걸다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책·출판

쇼펜하우어 플러스/ 조영남 지음, 문학세계사, 1만6800원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21 15:59:18

▲ 신간 ‘쇼펜하우어 플러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와 조영남 자신의 인생 경험을 교차해 때로는 형의 말에 수긍하며 때로는 대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문학세계사

“쇼펜하우어 형, 인생이 왜 이래?”

가수이자 화가로 살아온 조영남이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대답하면 조영남은 바로 수긍하지 않는다.

“형,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게 인생 아니에요?”

신간 ‘쇼펜하우어 플러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와 조영남 자신의 인생 경험을 교차해 때로는 형의 말에 수긍하며 때로는 대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 가수이자 화가로 살아온 조영남이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연합뉴스

가령 쇼펜하우어가 “안목이 좋은 사람은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안다”고 이야기하면 조영남은 대뜸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응수한다.

조영남은 평생 담배 한 개비를 피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유명한 대마초 파동도 무사히 피해 갈 수 있었다. 1975년 당시 수십 명의 연예인이 대마초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다. 한국 대중가요의 장례식으로까지 일컬어지던 이 소동에서 조영남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탁월한 안목 덕분이었다.

“왜 담배를 피우지 않았냐고? 간단하다. 맛이 써서 안 폈다. 대학 초년생 때 친구가 권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가 즉시, 퉤 하고 내뱉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커피도 써서 안 마신다. (…) 그러나 안목이 좋다고 해서 인생이 늘 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인생의 쓴맛도 제대로 겪었다. 쓴맛의 대표적인 예로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이 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으로 조영남이 얻은 것은 안티 그룹이다. 이혼도 쓴데 안티까지 풍년이니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번 그가 겪은 인생의 쓴맛은 그림 환불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집만 남기고 벌어 놓은 돈을 모두 잃었다. 결론적으로 재판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큰 타격을 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정말이지 쓴맛 일변도의 인생이었으나 그것마저 인생으로 받아들인 것이 나름의 생존 비법이라고 조영남은 자부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우리 인간의 고유한 이기심은, 마치 넓은 바다 위에 그저 한 방울에 불과한 우리 자신을 조금이라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이 세상을 멸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깨나 쓴다고 자부해온 조영남도 이 문장 앞에서는 ‘깨갱’한다. “이래서 쇼펜하우어구나, 이래서 괴테도 감탄했고 톨스토이도 경탄했구나” 하며 꼬리를 내린다. 인간의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를 백화점 쇼윈도처럼 깔끔하게, 사소한 이기심으로 축약시켜 놓은 데 탄복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선량하고 온화하며 겸허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궁핍이나 가난 속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조영남은 이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하면서 그러나 자신은 “선량한 마음씨나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너무나 ‘잘난’ 그로선 겸손을 실천하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공부면 공부,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글짓기면 글짓기까지, 깡촌 시골에서 그는 뭐든지 제일 잘하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서울로 상경해 전국 고등학교 성악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고 대학에 들어가 학내 오페라 주연으로 발탁되며 쎄시봉의 주선으로 미8군 쇼단의 정식 가수로 취직하고 TV에서 ‘딜라일라’를 부르며 세상이 내 손안에 있다고 느꼈다. 기고만장 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겸손은 힘들어’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48장의 화투 중에서 흑싸리가 가장 끗발이 낮다는 것에 착안해 흑싸리 넉 장을 세트로 그려 놓고 영어로 ‘Hard to be Humble(겸손은 힘들어)’라고 이름 붙였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통해 쇼펜하우어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지혜로운 태도를 제시하고 인간의 행복과 가치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록 학계에서 헤겔이나 칸트만큼의 스타는 아니지만 그의 따뜻하고 차분한 통찰은 뒤늦게 현대인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조영남의 ‘쇼펜하우어 플러스’는 쇼펜하우어가 스트레스와 절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에 주목한다. 쇼펜하우어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삶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결국 ‘나’다.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삶의 가치가 올라갈 수도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책 속에서 쇼펜하우어와 조영남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내 입장을 말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조영남의 솔직한 고백은 철학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 나아가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