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넘치는 무속 이야기와 무한반복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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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21 00:02:55

어느 부잣집의 후손들이 이상한 기운에 휩싸이며 집안에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영험하다는 무당이 맥을 짚어 보고는 조상의 무덤이 터를 잘못 잡았다는 진단을 내린다. 대책은 조상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것. 이 일에 풍수쟁이와 장의사가 끼어들고 요란한 이장 절차가 진행된다.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 최고 흥행을 기록한 ‘파묘’의 대강 줄거리다. 영화 속에는 무당·풍수 전문가·장의사가 등장하고 명당을 찾아서 묘를 이장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한국 영화에서 무당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작품은 ‘무녀도’(1972)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 뒤를 이어 ‘을화’(1979), ‘피막’(1981)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금기로 여겨지던 무속 이야기에 대해선 소재 제한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무속을 다룬 영화들이 간헐적으로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청담보살’(2009), ‘관상’(2013), ‘명당’(2018), ‘궁합’(2018), ‘대무가’(2022) 같은 영화가 나왔다. 흥행 성적은 들쭉날쭉했지만 점을 치는 무당이나 관상가·지관 등 무속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 작품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소재는 다르지만 6·25전쟁 와중의 남북한 이념 갈등을 그린 ‘태백산맥’(1975)이나 정치 권력의 흐름에 따라 물결치는 정치 검사들의 카멜레온 처세를 다룬 ‘더 킹’(2017) 같은 영화들에는 죽은 자의 넋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진혼굿을 하거나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 치성을 드리는 장면이 양념처럼 등장한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공포스릴러 영화 ‘곡성’(2016)도 굳이 분류한다면 무속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다.

방송 쪽에서는 유선방송(케이블TV)이 등장한 이후 수시로 다루고 있는데, 새해가 되거나 입시철·선거철에는 점집을 찾는 발길이 잦아진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웬만큼 규모가 있는 절이라면 한구석에 칠성각이 있고, 입시생 사이에선 ‘잘 찍어라’는 의미로 포크를 선물하거나 ‘잘 풀어라’는 의미의 휴지 선물, ‘잘 붙어라’는 의미의 엿 선물이 알게 모르게 오가는 게 유행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돼지머리를 갖다놓고 고사를 지낸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과학 시설에서도 고사를 지내는 풍습은 당연한 듯 여긴다. 지갑에 부적을 넣고 다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

무속을 다룬 연예 프로그램으로는 무속인 청춘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신들린 연애’를 비롯해 ‘샤먼-귀신전’ ‘관찰카메라, 점집’ ‘심야괴담회’ ‘미스터리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에로부부’ 등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가거나 에피소드로 다루는 등 무속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수시로 등장한다.

‘무릎팍도사’란 프로그램이 한동안 유행하다가 뒤따라 나온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무당 노릇을 하는 두 MC가 출연자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 주는 형식으로 몇 년째 진행 중이고, ‘인생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은 대놓고 무당끼리 누가 더 영험한지 시합을 벌인다. 영화나 방송에서 무속을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뜻이다.

젊은이가 많이 오가는 홍대 앞 거리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는 타로 점집은 운세를 예측하려는 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신내림을 받았다는 아기보살이나 신녀의 이야기는 길거리에 붙어 있는 수많은 광고지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상 묘가 테러를 당했다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알고보니 친척 중의 누군가가 운세가 좋아지라는 기원의 뜻으로 한 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났고, 어느 정치인이 깊은 밤에 꽃나무를 심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는 몇 시에 어디에서 나무를 심으면 운세가 좋아질 것이라는 무속적 기원의 행위가 아니라면 이해할 길이 없다. 정상인이라면 뜬금없는 시간에 뜬금없는 장소에서 기이한 행동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활 주변에는 무속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자갈밭에 흩어진 돌멩이처럼 흔하지만 정치권으로 넘어가면 상대를 흠집내려는 흉기로 돌변한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속이 개입했느니 따위를 두고 야당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3년이 넘도록 시도 때도 없이 꺼내들고 비난을 한다.

나는 괜찮고 네가 하면 하늘이 두 쪽 날 일이라도 저지른 건가. 이거야말로 걸려들 때까지 악담을 퍼붓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혹 영험한 도사의 자문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죽기살기로 덤빌 일인가. 무당 이야기 영화에 천만이 넘는 관객이 들고, 방송에서 무당이나 점 보는 장면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것은 못 본 척하며 뜬금없는 무속 이야기에 무한 시비를 거는 것은 정당한가. 저들이 왜 그러는지 신내림받았다는 아기보살한테 물어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