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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廣州)시가 주택 구매자에게 후커우(戶口·호적)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놨다.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광저우 정부는 바이윈·황푸·화두 등 시내 7개 구(區)에서 집을 사고 1년간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면 후커우 신청 자격을 얻게 된다고 전날 밝혔다.
광저우에서 36개월간 20만 위안(약 3900만 원) 이상 소득세를 낸 개인에게도 후커우 신청 자격이 부여된다. 천쉐창 중국지수연구원 애널리스트는 SCMP에 “어느 정도 (주택) 수요를 촉진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가 인재를 유치·유지할 수 있으며 결국 장기적으로 주택 수요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한 후커우 제도를 완화할 만큼 부동산 공급과잉 문제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로 ‘빈집’이 실제 얼마나 해소될지, 그에 따른 사회 변화 등 부수 효과도 주목된다. 고도성장기 30여년 내내 ‘불패’를 자랑하던 부동산 경기가 주저앉으면서 생겨난 유령도시들, 그 속의 빈집 9000만~1억3000만채, 바닥을 친 건설 경기로 남아도는 철근이 해외로 덤핑돼 새로운 무역분쟁을 초래하는 등 모두 현 중국의 어두운 일면들이다.
작년 자국 내 총생산(GDP)의 약 2.7%를 차지한 광둥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성(省)이며 인구 역시 최대다. 1억2600만 명(2020년 기준) 가운데 성도인 광저우시 거주자가 약 1880만 명인데 이 중 400만~500만 명이 현지 후커우 없는 상주인구다. 의료·교육 혜택을 받으려면 후커우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은 후커우 제도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약해 왔다. 시골 살던 중국인이 대도시에 장기간 거주하며 재산을 일궈도 해당 지역은 체류지일뿐 정식 주소지로 인정받지 못한다. 후커우가 세습되기에 자녀들 취학도 어렵다. 귀향하거나 소수 고액의 사립학교·해외유학을 선택하지 못할 경우 불법 서류 등으로 후커우 명의를 (매입)도용하는 수밖에 없다. 인도 카스트제에 비유될 만큼 ‘농촌 후커우’에서 ‘도시 후커우’로의 변경이 매우 어렵다.
주민통제에 용이한 후커우 제도가 유입인구 급증이 불가피한 개혁개방 이후엔 공산당 체제 유지에 더욱 편리한 점이 많아 굳건히 지속됐다. 그 결과 중국엔 산업국가들이 한때 겪기 마련인 이촌향도(離村向都) 시대의 극단적 빈민가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이른바 농민공은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 최악의 경우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만이기에 실업률에 잡히지도 않는다. ‘자국 내 피식민지인’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15면 계속).
후커우(戶口) 제도 완화란 중국 정부가 공산당 지배 체제를 지탱해 준 편리한 시스템마저 일부 양보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현 경제 침체의 돌파구를 달리 못 찾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것이 사회 내부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이끌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 관련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유입 저지에 철저하던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현재 10여 개 도시에서 후커우 제도를 완화 중이다. 한꺼번에 대량 인구가 밀려들면 기존 인프라 전반이 감당할 수 없어 총체적 난국을 유발한다는 정부 측 설명이 오랜 세월 먹혔다. 1978년 개혁개방 개시, 90년대 농민공의 본격적 급증 이후 드러난 무수한 불합리에도 후커우 제도가 지켜진 이유다.
중국 중앙 및 지방정부는 최근 부동산 경기를 되살리고자 여러 부양책을 내놨다. 베이징과 상하이시는 18일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부과할 때 주택 규모 구분을 없애 고급주택에도 낮은 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이번 광저우시 발표에 앞서 9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와 거주제한 해제 등 정책이 나왔고 이달 초 지방정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5년간 10조 위안(약 1937조 원) 투입 계획이 발표됐다.
지난달 중국 신축 주택 가격은 17개월 연속 하락세다. “가격이 더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더 떨어질 곳이 없고 정부에서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지난달 4일 허베이 옌자오(燕郊)의 어느 부동산 중개업자가 한 말이다. 옌징(베이징의 옛이름) 근교 즉 옌자오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30여㎞ 떨어진 곳이다. 행정구역상 허베이성 소속이지만 베이징 도심까지 대중교통 약 1시간 거리여서 출퇴근 직장인이 많이 산다.
옌자오는 비싼 베이징 집값을 피해 한국 교민과 조선족 중국인들이 옮겨간 곳이며 부동산 가격 급등·급락을 겪은 대표적 지역의 하나다. 공사가 멈춘 지 오래돼 철골 뼈대를 고스란히 드러낸 건물들이 즐비하다. 완공돼 빈집 상태인 새 아파트들도 많다. 옌자오의 부동산 소개업자들에 의하면 위성도시로 한창 떠오르던 2010년대 중반엔 평당 3만∼4만 위안(약 572만∼762만 원)이었으나 현재 1만∼2만 위안에 불과하다. 이번 부동산 정책 발표 후 문의가 조금씩 오기 시작한 상황이다.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지난달 27일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RRR·지준율)을 0.5%포인트 낮춰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89조 원)을 공급했으며 정책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 역시 인하했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내리자 1선 도시들이 즉각 주택구매 규제를 완화하고 나선 것이다.
충칭(重慶)·쓰촨(四川) 등 10여 개 성과 우한(武漢)·난창(南昌) 등 50여 개 도시는 자체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국경절 연휴 기간(지난달 1∼7일)과 맞물려 정부 주도로 20여 개 성·시·자치구, 130여 개 도시에서 1000여 개 부동산회사가 참여한 가운데 약 2000개의 다양한 부동산 판촉 행사를 펼쳤으며 중국중앙방송(CCTV)은 해당 연휴 기간 주택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대책으론 어림없다는 게 서방세계 경제학자들 시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선 현재 중국 내 빈 주택이 9000만 채 이상인 것으로 추산한다. 한 가구당 3명씩만 쳐도 약 2억 명이 살 수 있는 규모의 수치다. 그나마 인구 유입이 이어지는 1선 도시라면 모를까 인구 감소 중인 소규모 도시에선 빈집 처리 해결이 여전히 난망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중국 주택 재고의 60% 이상은 인구 수십만∼수백만 명 정도인 3∼5선 도시들에 있다. 토지판매와 건설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지방 정부를 살찌웠던 시대의 관성을 중국은 좀처럼 떨치지 못한다. 1선 도시 포화상태 이후 소도시들이 건설업자들 목표가 돼 호황을 이어갔다. 여기서 인식해야 할 게 인구통계학적 현실이다. 이미 인구대국 1위 자리가 인도에게 넘어갔다.
중국 인구는 2022년 말 기준 14억1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만 명 줄었다(작년 합계출산율 1.0명).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설 때 일반화되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중국에선 국민소득 1만 달러 시점부터였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중국 인구가 14억 명 이하, 거기서 65년쯤 더 지나면 5억 명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티안레이 황 연구원은 “집을 채울 사람이 충분치 않다”며 이를 “주택공급 과잉 문제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는 근거”로 꼽았다.
현재 중국 곳곳엔 건축업체들 파산 등으로 개발 중단된 유령 도시들이 많다. 260개 호화로운 유럽식 빌라로 계획돼 2010년 착공됐으나 2년 만에 프로젝트가 중단돼 건물 뼈대만 흉물스럽게 남은 랴오닝성 선양(瀋陽) 인근의 국빈맨션이 유명한 사례다. 방치된 채 인근 농민들의 경작지나 가축우리로 일부 사용돼 왔다. 황폐화·슬럼화가 불가피하다. 로고프 교수는 “주택의 4분의1이 빈집 상태인 도시들이 상당하다. 그런 곳에선 법·질서 유지가 어렵다. 향후 큰 사회적 거버넌스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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