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美대선 결과는 피씨즘·워키즘에 대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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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20 00:02:40

2024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피씨즘(정치적올바름주의)·워키즘(깨시민주의)이 초래한 사회적 피로감과 미디어 발전사 측면에서 살펴보자. 도널드 트럼프 승리 배경을 물가·국경 사태에서 찾고 경제·안보 리스크 측면에서 미래를 내다본 평론이 많지만 이런 인문학적 해석은 드문 것 같다.

미 주류 언론의 현주소와 민낯, 이들 레거시 미디어의 하류로 취급되던 뉴미디어(팟캐스트·유튜브·엑스 등 SNS)와 비주류 언론의 존재감 부각을 제일 먼저 짚고 싶다. 양쪽은 미 대선 승패 관련해 상반된 전망을 제시했으나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현실과 동떨어진 미 유명 레거시 미디어, 그것을 받아쓴 국내 주요 일간지·방송사가 체면을 구겼다.

인류사를 지성과 미디어 발전 과정으로 볼 때, 문자의 발명·보급이 지식문명을 건설했고 인쇄술은 그것의 공유를 넓혔으며 대량인쇄가 익명 다수 독자를 이끌어냈다. 이들 활자매체야말로 근대(현대) 대중 지성의 중추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에 의한 초연결사회와 그에 따른 탈중앙시대를 산다. 공영방송 ‘9시 뉴스’나 대형 일간지들의 위상과 신뢰도가 형편 없이 떨어진 게 대표적 증거다.

개개인이 미디어인 시대, 생생하고 촘촘한 지식·정보를 뉴미디어로 접하는 문명사의 대전환 현실을 이번 미 대선이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 일론 머스크가 엑스(X) 이용자들을 향해 “여러분이 언론”이라고 추켜세운 게 립서비스만은 아니다. 카멀라 해리스가 주류 언론을 만나 동문서답 횡설수설할 때 트럼프는 뉴미디어와 부지런히 접촉했다. 특히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3시간이나 막힘 없이 얘기하며 미국판 ‘이대남’(페미에 치인 젊은 남성)과 흑인·라틴계 유권자 막판 표심을 흔들었다.

국내외 주류 매체는 ‘해리스 띄우기’ ‘트럼프 깎아내리기’로 일관했다. 해리스의 언론 노출 증가와 함께 지지율이 꺾이고 있음에도 필사 방어를 했지만 정상적인 경선을 치뤘다면 결코 후보에 오를 수 없는 인물임을 끝내 덮지 못했다.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나이 먹도록, 그런 고위직에 오를 때까지 국가적 현안에 깊은 관심과 고민 없이 살아 온 사람의 전형을 드러냈다.

해리스의 출세엔 비(非)백인이며 여성이라는 점이 주효했으리라 짐작된다. 검사·검사장·주(州)법무장관·상원의원·부통령, 화려한 30년 이력을 미 주류 사회의 피씨즘·워키즘 없이 설명하기 힘들다. 이는 피해의식과 선민의식으로 뒤범벅된 세계관·가치관이며 현실 사회주의 체제 몰락 후 우리 일상에 스며든 문화적 마르크시즘이다.

이들은 망할 것이라던 자본주의가 여전하자 문명사를 지탱해 온 훨씬 근본적인 것에 주목했다. 바로 양성(兩性) 화합에 기반한 세상을 허무는 시도다. 생물학적 남·녀 차이의 부정으로 성별 구분이 사라지면 가족제도는 조만간 무너지게 돼 있다. 지난달 광화문 집회에 200만 명이 모인 것은 이런 물결이 코앞에 이르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피씨즘·워키즘은 세상을 인종·성별 등에 따른 강자·약자(소수자)로 나누고 가해·피해 구도로 설명하며 인권과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강자를 악마화한다. ‘산업문명=악’ 인식은 또 다른 주요 의제인 기후위기론의 주요 근거다. 입학·취직·승진 시 비백인·여성·동성애자·장애인 등이 가산점을 얻는 다양성·평등·포용성(DEI) 논리, 미국의 출발을 1776년 독립 대신 1669년 흑인노예의 상륙으로 삼는 역사 해석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미 학계·언론계·정계에 이런 경향이 만연하면서 무능한 검사 해리스는 비백인 여성이었기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선 선거운동 기간 여론조사에서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70% 이상 나왔다. 생계환경의 악화와 차원이 다른, 피씨즘·워키즘의 피로감이 드러났다고 본다. 유튜브로 미 의회 인사·조사 청문회 석상의 질의응답·갑론을박 광경을 시청하면서 받은 소감이다.

여성형·남성형 대명사를 쓰지 말 것(인간의 성정체성은 수십개이므로), 성전환자의 여성스포츠 참가 및 여성전용시설 이용 문제,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는 것, 미성년 자녀의 성정체성 혼란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는 법안 관련 논의 등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머스크가 공화당 트럼프에 올인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사업적 ‘베팅’을 했다기보다 피씨즘·워키즘 세상에 반기를 든 것이다. 몰래 성전환한 장남에게 의절당한 머스크의 아픈 경험도 무시 못한다. 지난 20~30년간의 사회문화적 흐름에 대한 거부감, 권력화된 레가시 미디어를 향한 유권자들의 반란이 트럼프 압승을 가져온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2기는 피씨즘·워키즘으로 망가진 미국의 회복 계기가 될 것이다.

60년 전 나온 M. 매클루언의 명언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과연, 미디어란 메시지의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메시지다. 무수한 개인미디어가 저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실히 사실·진실을 추구하다 보면 건강한 경쟁과 교차확인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지식과 정보는 더욱 탈권력·탈중앙화하며 우리 통찰력을 키워 줄 것이다. 그럴수록 요구되는 개인의 성숙, 이것이야말로 뉴미디어의 메시지다.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