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12] 또다시 여의나루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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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를 기다리는 승강장의 킬러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14 06:20:53

주결을 이발소에 데려가고 멋진 양복을 준비해 준 것도 바로 이 사내, 유지오였다. 흰 장미로 침실을 장식하고 주결과 에바가 입을 똑같은 무늬의 파자마 두 벌을 준비한 것도, 주결과 에바가 해후하던 그 순간을 지켜본 것 역시 하운과 유지오, 두 사람이었다. 유지오에 대한 하운의 신뢰. 하운에 대한 유지오의 믿음. 유리 파편 같은 질투 한 조각이 못난 내 심장 한쪽에 날아와 고통스럽게 박혔다.

‘잘됐구나.’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안도감이 핏물처럼 가슴 한구석으로 뜨겁게 흘러내렸다.

택시를 타고 내가 여의나루역에 도착한 것은 21일 새벽 다섯 시 반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곧 첫 차가 역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9시 비행기라고 했으므로 기다리면 그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계산했다. 월요일 이른 새벽이어서 승객들도 거의 없었고, 스크린도어 정비도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호텔에서 역까지의 방향과 동선을 그려 보았다. 여행 가방이 있으므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타고 내려오기보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리라 예상했다. 여의나루역은 상·하행 열차가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하는 섬식 승강장이었고 양쪽 계단 아래와 계단과 계단 사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앙 공간 외에도 벽으로 가로막힌 양쪽 플랫폼을 이어 주는 통로가 있었다. 나는 방화행 방면에 있는 좁은 통로 뒤에 몸을 감추고 프로 킬러처럼 유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냥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신부대기실에서 울먹이던 유리는 스스로 대답을 발견한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유리는 걸음을 옮겨 왔다 갔다 하더니 천장에서 비추던 조명 한가운데 섰다.

“난 요즘에도 자주 꿈을 꿔요. 그날, 아저씨가 운전하던 열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던 순간을요. 그렇게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라니!”

꿈꾸듯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대기실의 어떤 불빛보다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승강장 위쪽에 설치된 두 대의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쪽에는 비상시 객차 대피요령이나 심폐소생술과 자동제세동기 사용법을 안내하는 화면이, 다른 한쪽에는 열차 도착 시간 알림이 반복해서 표시되었다.

첫 차가 떠났다. 유리는 보이지 않았고 이른 시간이어서 다른 승객들도 거의 없었다. 텅 빈 승강장에 숨어서 나는 유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어긋나 만날 수 없길, 나타나더라도 내 예상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코트 깃을 세우고 목도리까지 여몄지만, 스크린도어가 열린 승강장은 열차가 몰아온 바람으로 몸을 덜덜 떨게 할 만큼 추웠다.

6시가 조금 지났을 때, 캐주얼한 여행복 차림을 한 유리와 그녀의 영웅 씨가 각각 배낭을 어깨에 메고 트렁크를 끌며 승강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내 예상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화행 방면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영웅 씨 뒤에 느릿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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