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러시아의 전쟁 철학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정치적 동기에서 발발하고,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하려면 전쟁의 원인이자 목표인 정치적 목적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인간 본성에 의한 ‘폭력의 무제한성’으로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이성’을 지닌 정부에 의해 전쟁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또 “전쟁은 정치적 행동이자 수단이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적 교섭의 연속이다”고 했다. 정치적 의도가 목적이고 전쟁은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므로 정치는 두뇌이며 전쟁은 도구라는 것이다. 그는 “무거워서 양손으로 온 힘을 기울여 들어야 하고, 단 한 번만 내리치면 더 이상 내리칠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군도(軍刀)를 가벼운 펜싱용 검(劒)으로 변화시켜서 자유자재로 적의 공격을 피하며 자기 의도대로 적을 찌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가 전쟁이라는 도구를 다루는 방법”이라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와 올해 1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통일노선의 전면 전환을 선언했다. ‘우리민족끼리’ 노선을 폐기하고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국가 관계’라고 재정의한 직후 북한은 1월 내내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력시위에 집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보고에서 “현재 한반도 정세가 위태로운 안보 환경에 놓여 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고 있고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국방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미 양국의 ‘워싱턴선언’과 ‘핵협의그룹(NCG)’을 안보 위협으로 강조하고, ‘초대형 전략핵잠수함’과 ‘핵전략폭격기’ 등을 중요한 안보 위협으로 지적했다.
특히 김정은은 “전쟁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현실적 실체”라고 하면서 인민 군대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을 준비”하라고 강조하며 군사적 태세를 갖출 것을 주문하며 기존에 취급되지 않았던 민방위 부문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기 위해 북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남북 관련 외곽기구를 정리하거나 소속을 변경시켰다. 적대시 정책으로 북한의 대남 정책을 완전히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지배하는 삼위일체론(Trinity)을 들고 있는데, 첫째는 인간의 ‘맹목적인 본성’의 영역이다. 이는 주로 증오감과 적대감에서 원초적 폭력성을 분출하는 국민과 관련이 있다. 둘째는 ‘우연성·개연성’의 영역에 있는 최고사령관과 군대이다. 셋째가 ‘순수이성’의 영역에 있으면서 정치적 도구로서의 전쟁을 통제하는 대통령과 정부이다.
이 세 가지는 상호 분리될 수 없는 일체적 보완관계에 있는데, 첫째 요소인 국민의 감성과 열정이 악화될 경우 작은 동기조차도 큰 전쟁으로 확전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요소인 군(軍) 지휘관과 부대가 지성·능력·용기로써 불확실성과 마찰을 극복하지 못하면 전쟁 자체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세 번째 요소인 지도자와 정부가 본능이나 이념과 정치적 욕구에 사로잡히면 폭력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다. 이는 지휘관과 부대는 지성·능력·용기·훈련을 통해 이길 수 있는태세를 갖춰야 하고 지도자와 정부는 순수이성에 의한 지도를 통해 전쟁이 극단화되지 않도록 제한하는 가운데 승리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과 관련하여 강조되는 것은 과학에 바탕을 둔 순수이성으로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부분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보다 오늘날 군은 공군의 무장도 공대공미사일에서 공대지미사일 장착 등 여러가지 대응방안과 조치를 보강했으며, 해군도 무기체계를 보완하는 등 대응체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유사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은 군 지도부의 역량과 결심 능력이다. 각 직책에서 자기 할 바를 돌아보고 즉각적인 대응과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말이다. 북이 도발할 경우 결정적 응징을 통해 감히 도발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상황을 관리하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도 안보담당자들의 과업이다. 안보담당자들은 삼위일체의 요소들을 이성적으로 조화시키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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