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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최근 몇 년 사이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는 단연 부동산과 주식시장 공략법을 다룬 도서들이다. 실물경제를 다루는 유튜버도 부동산과 주식에 관한 분석과 전망을 다루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조회수도 높은 편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집값이 폭등할 때 그 중심에서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빚내서라도 부동산 투자)과 갭투자(*주택매매가와 전세가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부동산시장은 단군 이래 최고점을 찍었다. 또 빚을 내서라도 너도나도 뛰어드는 주식투자의 열기가 광풍처럼 몰아쳤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인생은 한 방’ 주의에 사로잡힌 것은 20·30세대, MZ들이었다.
그러나 영끌과 빚투(*은행과 증권사 대출로 주식투자)로 버티고 허장성세로 쌓아 올린 호시절도 끝나 가고 있다. 글로벌 체인으로 얽혀 있는 경제위기 파도의 도미노 앞에서 예측할 수 없는 벼랑 끝 데드라인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내수경기는 얼어붙을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계경제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때가 됐다. 빚을 줄이고 저축에 신경 쓰는 것만이 시계 제로 상태인 경제 파국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가계대출의 늪은 여전하다. 작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기관에서 나간 가계대출액 규모가 476조938억 원에 달한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 및 6대 증권사의 담보·신용대출, 주식융자 신규 취급액 집계치다. 이 중 MZ세대의 부채는 134조 원에 달한다.
신규 부채는 1년 전보다 1.5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부동산시장이 고점을 찍은 후 1차로 갭투자 영끌족들이 집을 팔고 빠져나간 시기와 맞물려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신규로 집행된 대출은 작년 하반기 186조3천494억원이었던 것이 올해 1∼7월에는 289조7천444억 원으로 103조 원가량 늘어났다.
이렇게 빚낸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다시 흘러 들어갔다. 주택담보대출은 60조7천759억 원에서 101조694억 원으로, 주식시장은 102조5천914억 원에서 151조2천781억 원으로 신규 대출이 늘었다. 빚더미 위에서 하우스푸어로 살고, 깡통계좌의 투자로 한탕을 노리는 풍조는 경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산 넘어 산의 중첩된 4고의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데도 빚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한 이런 상황이 관리나 통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위기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금이나 주식을 빌려 매매하는 빚투는 증권사에서 신규 취급액이 무려 253조8천695억원에, 주식 대금을 외상으로 거래하는 금액까지 합하면 도합 300조 원에 육박한다. 대출을 갚지 못해 발생한 연체 비율도 지속적인 상승 추세다.
영끌과 빚투의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도래할지도 가늠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최근 나아진 경상수지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영혼까지 끌어다 쏟아부은 빚투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경제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동유럽과 중동에서 터진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빨간불이 켜지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고금리의 부메랑에 시달리며 빚에 허덕이는 트리플 악재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부채는 2017년 GDP 대비 147.0%였던 것이 2022년 173.6%로 급격히 증가했다. 증가폭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증가세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를 기반으로 금융업종 외의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GDP 대비 총부채율을 살펴본 결과 2021년(113.7%)에 이미 1998년 외환위기 때의 108.6%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다 극심한 세수 부족으로 정부가 올해 한국은행에서 빌린 돈이 113조 원이 넘는다. 정부가 부담한 이자만 1천500억 원에 이른다. 정부 입장에선 일시적인 재정 부족을 메울 목적으로 활용하고 갚을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라지만 회계연도 내에 갚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내년 예산편성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 자명하다.
한은의 돈은 물가 관리가 그 용도의 주목적인데 정부 대출금이 정책 집행으로 시중에 풀리면 물가 관리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고물가-고금리의 악순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정부와 한은은 가용할 수 있는 여력을 최대한 끌어 쓰고 있는 셈이다.
세계는 지금 두 개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바람이 나라와 나라, 기업과 기업으로 얽힌 글로벌 체인에 미칠 영향도 고려 대상이다. 이 전쟁들로 빚어질 파장은 차치하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유보된 셧다운 위기, 중국의 경제침체 가속화, 글로벌 고금리·고물가의 늪이 깊어지는 시점에 영끌과 빚투는 자진해서 어두운 경제 고립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한은은 경기 흐름과 여건 상 금리를 내릴 수 없고 오히려 올려야 하는 압박과 당위성에 쫓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영끌과 빚투를 해 놓고는 넋 놓고 금리인하를 기다리거나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건 개인파산의 수렁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영끌과 빚투에 아직도 목 매고 있다면 경기 회복의 모멘텀이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고유가의 흐름이 멈추고 내수 소비가 늘고, 금리가 안정되고 기업이 자금 조달에 쫓기기 않고 수출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투자 반등의 신호가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한국은행은 다섯 번이나 금리인상을 눌러 놓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당장에라도 금리인상을 단행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는 원하는 부를 이루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 조급한 마음이야 이해하겠으나 지금은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를 잠시 멈추고 한숨 쉬어 갈 인내와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가진 것조차 모두 잃기 전에 망설이지 말고 영끌과 빚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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